大倫 開校 100周年에 즈음하여
“日帝에 抗拒한 교남인 이여
獨裁를 물리친 대륜인 이여
來日도 仁. 知. 勇 갈고 닦아서
積極과 能動의 삶 哲學으로
祖國과 民族의 雄飛를 위해
情熱과 身命을 바칠지어다. “
母校 大倫 校庭에 세워진 〈校碑銘〉에 있는 글귀입니다.
암울했던 日帝下에서 朝鮮의 國權을 回復하고 民族精神을 일깨우기 위하여 靑年 홍주일 선생님은 31 萬歲運動의 豫備檢束으로 獄苦를 치루고 나오시자마자 愛國志士 김영서 선생님과 정운기 선생님을 糾合하여 우리 母校의 前身인 嶠南學院을 세우셨고, 그렇게 胎動된 母校가 100年이란 긴 歲月동안 國家와 民族의 歷史와 함께하며 이 사회에 奉仕 獻身하는 수많은 人才를 養成해낸 産室로 成長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過程은 정말 험한 가시밭길 이었으며 가슴 벅찬 感動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母校 大倫은 設立初期부터 日帝의 온갖 妨害工作은 물론이요
解放 후 닥친 戰爭의 慘禍를 겪기도 하였으며, 그 후에도 거듭된 學校의
財政難은 閉校의 危機에까지 몰려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남아 이제 開敎 100周年이라는
榮光된 生一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난히도 어려웠든 우리의 지난 歷史이기에
그 100年은 더욱 자랑스럽고 값진 遺産입니다.
母校 100년의 歷史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感謝해야 할 분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 가장 感謝해야 할 분 중의 한 분으로 한솔 李孝祥 선생님을 들고 싶습니다. 母校를 떠나신 후 우리나라 最 長壽 國會議長을 歷任한 政治人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한솔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大倫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名門 東京 帝大를 卒業하시고 얼마든지 좋은 職場을 求할 수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굳이 大倫의 敎師로 오셔서 大倫에 대한 至極한 사랑
때문에 無報酬로 奉職하시면서 쓰러져가는 大倫을 살리기 위하여 수많은 優秀한 日本 留學派 선생님들을 給與도 제대로 支給하지 못하면서도 가슴으로
說得하시어 大倫學校로 모셔 오시고, 大邱地域의 財産家들에게 수없는 說得
으로 財政難에 빠진 大倫學校를 살리기 위한 피나는 努力을 하신 끝에 결국은 大邱地域의 財産家이신 蘭史 徐丙朝 선생님에게 학교를 引受시키시고, 당신께서는 校長으로써 大倫을 일으켜 세우기에 盡力하신 우리 大倫의 後學들로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恩人 이십니다. 여기 한솔 선생님의 大倫을 그리워하는 詩 한편을 올립니다.
대륜아 잘 있느냐
한솔 이효상
나 꿈에도 잊지 못할
그대 대륜아 잘 있느냐
남 달리 가난히 자란 그대
질곡(桎梏)을 구비 겪은 그대
깊이 가슴속 조선의 피가 끓고
높이 지향(志向)하는 하나 뜻이 있더니
이제 다시 조국을 찾으려는데
그대의 모습이 바야흐로 나타나리로다.
아∼ 허무러진 교남(嶠南) 옛터
수성 넓은 벌에 의연한 생명
나 꿈에도 잊지 못할
그대 대륜아 잘 있느냐
(1949년 대륜교우지 샛별 창간호에서)
한편 우리의 선배님들은 學校의 窮乏한 財政難을 打破하기 위하여 200여명의 在學生들이 緣坐데모와 함께 血書로 大邱地方의 財力家들에게 學校의 引受를 要請하는 歎願書를 내기도 하였으며, 大邱市民들의 嶠南學校 살리기 運動으로 大倫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地方 財力家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大邱의 妓生 ‘앵무’라는 분은 비록 妓生의 身分 이면서도
“民族의 學校인 嶠南學校만은 살려야한다”며 全財産의 절반인 당시 돈 2만원이라는 巨金을 寄附해 주시기도 하여 (現在의 돈으로 약 8억 원 相當) 命脈을 이어온 學校입니다. 우리 大倫은 宗敎界에서 운영하는 미션학교도 아니요,
國公立學校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떤 團體에 의하여 만들어진 學校도 아닌
그야말로 오직 大邱市民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100年을 이어져 온 자랑스러운 大邱市民의 學校요 우리 民族의 學校입니다.
또한 이갑상 선배님(중1회) 같은 분은 日帝의 徵兵으로 끌려 가셨지만
결국은 脫出하여 滿洲地方에서 抗日武裝鬪爭을 하시다 逮捕되어 獄苦를 치루기도 하셨고, 學徒兵으로 戰爭에 參與하여 仁川上陸作戰을 成功시키기 위한 欺瞞戰術의 하나로 1950년 9월 15일 새벽 경북 영덕군 장사면에서 敢行된
장사상륙작전과 같은 戰鬪에서 無名으로 散華하신 先輩님들은 그 數를 헤아리기 어려우며, 잘 아시다시피 1966년 海兵 靑龍部隊로 越南戰에 參與한
이인호 先輩님은 部下將兵들을 살리기 위하여 날아든 敵軍의 수류탄을 自身의 몸으로 막아 수많은 將兵들을 살려낸 殺身成仁의 義人이시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大倫人들은 國家와 民族의 부름 앞에서는 목숨마저 草芥
같이 버릴 수 있는 愛國者 이었으며 그러한 人性을 길러온 大倫學校는 그
뿌리에서부터 다른 學校와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세계 어느 곳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母校입니다. 母校의 設立者님들과 財團, 그리고 先輩님들과 恩師님들, 그 분들의 피눈물 나는 勞力과 사랑으로 버텨온 우리의 母校는 100년이란 長大한 歷史를 안고 지금까지 人才의 産室로 남아 三千里
골 곳에서 그 빛을 發하고 있는 수많은 卒業生들을 輩出하였지만 이제 過去의 100年을 넘어 未來의 100年 200年에도 그 燦爛한 歷史를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이 時代를 사는 우리 同門들의 責任이요 義務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昨今의 敎育實態는 어떠합니까? 學校가 靑年期를 보내면서 靑年의 꿈을 키우고 人性敎育의 場으로써의 機能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大學進學을 위해 必須的으로 거쳐야 하는 하나의 手段이 되었고, 入試에 필요한 成績을 얻기 위한 한갓 私設學院과 같은 機能으로 轉落해 있습니다. 그런 緣由로
學校의 建學理念이나 同期生, 同門의 槪念은 사라진지 오래고 같은 班 親舊는 內申成績의 競爭者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責任이 아니라 그간
無計劃的으로 變해온 우리 敎育政策의 탓이라 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우리 敎育의 政策이 언제 어떤 方式으로 變해가더라도 우리 大倫만은 우리의 建學理念인 “忠”과 “孝”의 思想을 繼承 發展시키고 우리만의 자랑인
나라사랑, 겨레사랑, 모교사랑의 精神을 이어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開校 100周年을 맞이하여 100周年 記念館을 建立하여 後學들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開校100周年 記念館은 過去의 歷史를 돌아보게 하여 母校에 대한 矜持와 自尊心을 심어주는 博物館과 같은 機能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한 機能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歷史를 바탕으로 하여 자라나는 靑年들의 未來에 대한 꿈과 理想을 심어 줄 수 있는 記念館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記念館에서 最小限 1년에 한번씩 이라도 自由로운 討論會도 하고 先輩나 名士의 特講도 들으며 스스로 進路에 대한 苦悶을 해 보기도 하면서
創意的인 思考를 키워 나갈 수 있는 記念館이 되어야 할 것이며, 同期生,
同門, 母校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배울 수 있는 그런 記念館임과 同時에 周邊의 住民들과 大邱市民들에게 記念館의 空間이 積極的으로 開放되어 住民과 市民들로 부터 사랑받는 記念館이 되고 學校가 될 수 있어야 진정한 民族私學의 100周年 記念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特히 우리가 大邱市民들로부터 받았던 큰 恩惠를 이제는 조금 이라도 갚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記念館의 空間은 大邱市民들에게 여러 用途로 使用할 수 있도록 開放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大倫을 長期的으로 더욱
빛나게 할 것이고 母校의 앞날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리라 믿습니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大倫人”
“國家와 民族에 奉仕하고 忠誠하는 人才를 키워내는 大倫學校”로 認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精神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의 母校는 大邱에 있는 地方의 私立學校인 탓에 全國的인 認知度가 中央의 學校나, 地方에 있는 學校라 하더라도 그 地方의 이름을 딴 國公立學校에 비하여 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大倫은 開校 100周年을 起點으로 全國的으로 認知度높은 名門學校로 變身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大邱 慶北 地方의 사람에게는 물론 全 國民들에게 母校가
널리 弘報될 수 있는 戰略的 弘報가 필요 합니다. 卒業生 各自가 스스로 大倫 出身이라는 것을 自負心으로 느낄 수 있어야 母校에 대한 사랑과 觀心도 깊어 질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母校의 100周年을 4년여 남긴 時點에서 재경동창회는 開校100周年 記念
事業을 成功的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母校100周年 記念事業 推進委員會”라는 긴 이름의 組織을 發足시키고 지난 3월 30일 在京同窓會 臨時理事會에서
그 책임자에 不肖한 저를 選出했습니다. 지난 3年間 在京同窓會長을 맡아
그 職을 내려놓은 지 1年도 채 못 된 시점에 다시 이 莫重한 責任을 맡기심에 우선 이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섭니다.
名望있고 能力있는 合當한 분들이 많이 계심에도 스스로 나서주시는 분이
계시지 않아 不得已 부족한 저는 오직 同門 여러분들의 積極的인 協調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이 責務를 감히 受諾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기에 同門 여러분들의 積極的인 應援과 協調를 간곡히 呼訴 드리면서 아직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다면 마지막 奉仕라고 생각하고 身命을 다하여 努力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巨大한 事業은 오직 모든 同門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각자가
벽돌 한 장씩을 올려놓는다는 同參意識으로만 可能합니다. 推進組織은 同門 여러분들의 뜻을 糾合하고 實務的인 일만 可能 할 뿐 모든 同門님들의 도움 없이는 한치 앞으로 나아 갈수 없습니다. 남다른 우리 大倫의 凝集力으로
다함께 만들어내는 開校 100周年 記念事業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시기를 仰望합니다.
2017년 4월 12일
모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안 동환 (고 17회) 올림
친애하는 동문 선후배 여러분!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글귀 하나 소개합니다.
“사람은 많으나 義人은 드물다.
진정한 샛별이 될 義人은 너 대륜의 품에서 자랐고,
지금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자랄 것이다.
복 되도다 대륜, 너 대륜, 나의 사랑아.”
한솔 이효상 선생님이 남기신 말입니다.
우리 대륜의 은인이신 한솔 선생님을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새롭게 떠 올리게 됩니다.
한솔 선생님은 잘 아시다시피 당시 최고 학부인 동경제대 독문과를 졸업하신
젊은 엘리트로써 보장된 좋은 직장, 좋은 자리를 다 마다하시고
대륜의 건학이념인 민족교육을 구현하기 위하여 재정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자원해서 모교로 오셨고 쓰러져가는 학교를 구해내기 위하여
우선 선생님의 교육 동지들을 규합하여 기라성 같은 교사진용을 구비 하시어 드디어 교남 7학사의 시대를 열었으나 안타깝게도 교원의 급여도 지급할 수 없는 열악한 학교의 재정형편상 전 교직원이 오직 교육에 대한 신념 하나로 긴 시간 무보수로 모교에 봉사하도록 하시면서 대륜을 지켜내셨습니다.
선생님은 극심한 모교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구 경북의 자산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시며 재정적 지원을 호소하셨으나 외면당하기 일 수 이었고
간혹 뜻이 있는 자산가들로서도 당시 일경의 감시를 받고 있는 민족학교
대륜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대륜을 살리기 위한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도움의 손길도 있었으나
그 역시 타는 가뭄에 내리는 한 방울의 비처럼 잠시일 수밖에 없는
재정적 어려움을 전 교직원이 합심하여 이겨내시면서
끝내 대구의 자산가이신 난사 서병조 선생님께 눈물로 호소하여
모교를 의탁하여 폐교의 위기에서 구해내신 대륜의 恩人이십니다.
제가 감히 이 어른의 존함을 들먹이는 이유는
요즈음 제가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책임을 맡아 전국에 동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도 가끔은 사기가 꺾이고 지칠 때는 한솔 선생님의
그때의 행적을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조금 힘든 것은 옛날 선생님의
그것에 비하면 만분의 일의 노고도 되지 못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다시 힘을 내어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꼭 성공시켜내어야 한다. 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합니다.
그간 동문들이 모이는 행사장이나 회보 등을 통하여 여러 차례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취지와 계획을 설명 드리기도 하였습니다만
시간이나 지면 관계상 부족한 점도 많았고, 아직도 저희의 노력이 부족하여 전 동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졸필의 서신으로 대신하고자
하오니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고 다 함께 뜻을 모아
함께 이루어 내는 모교의 100주년 기념사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나라에 그 역사가 100년이 되는 학교는 적지 않습니다.
일제의 의하여 강제로 조선의 문호가 열리면서 3.1. 운동을 전후하여
신학문, 신문물에 대한 교육열은 높았으나 민간의 자본이 크게 성숙되어
있지 못하였던 시대 상황이라 그 무렵에 설립된 학교들의 대부분은
일제에 의한 관. 공립학교이거나 또는 종교계나 단체의 지원을 받는
학교들 이었으며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학교는 그 수가 많지 않으며
그나마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데
개인 자산가가 그 정도의 자본을 형성할 수 있으려면 일제 당국과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설립된 많은 학교들이 제각각 민족학교라 자칭하지만
진정한 민족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설립자가 반드시 애국지사여야 하고 건학의 이념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하여 설립되고 그 정신이 계승되어 오는 학교이어야 하겠기에 감히 진정한 민족학교는 한수 이북에 오산학교와
중앙학교, 한수 이남에 대륜 학교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들만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각종 자료에서 증명되는 일이므로
동문 여러분들은 무한한 긍지를 가지셔도 좋습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우리 모교 대륜의 역사가 100년에 이르렀습니다.
이 100년의 영광을 뜨겁게 축하하고 다시 미래의 1000년을 설계하고자
하는 것이 100주년 기념사업의 목적입니다.
100주년 기념사업의 개략적인 계획은
첫째: 모교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자축하는 행사와 함께 재학생과 동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모교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널리 홍보하여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이려 합니다.
둘째: 과거 우리에게 도움을 주셨던 대구의 시민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대구 시민들로부터 존중받고 사랑받는 학교로 만들고자 합니다.
셋째: 모교의 미래 100년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합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다 중요한 사업계획이지만 가장 역점사업은 역시
미래 100년을 위한 사업으로써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건립하여
지난 100년의 역사와 함께 장차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갈
후배들을 위한 미래인재 육성관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물론 큰돈이 소요되는 일인지라 어렵고 힘든 일이겠으나
의지를 가지고 남은 기간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국민은 그들의 역사가 지독한 핍박과 고난을 다 이겨내고
오늘날 세계의 경제를 제패한 나라이기에 그들 민족은 세계 최고의 자긍심과 단결심과 애국심을 자랑합니다.
우리 대륜 100년의 역사도 유난한 가난과 탄압과 질곡을 구비 겪으면서도
끝내 6만의 동문을 배출해 내었고 모교가 배출해 낸 동문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진정한 샛별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구 경북의 최고 명문사학으로 우뚝 선
자랑스러운 역사이기에 그 역사가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하고 보배롭습니다.
그리고 이 빛나는 전통과 명성을 바탕으로 미래 100년, 1000년을 이어가며
이 나라 최고의 인재의 산실로 도약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동문 여러분들 중에는 그동안 모교와 동문을 위하여 말없이 열심히 헌신 봉사해주고 계신 분도 많고, 지금까지는 내 인생의 목표가 있고, 내 사는 것이
바빠서 마음은 있어도 선뜻 뜻을 내지 못하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평생에 단 한 번밖에 없을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에
모교의 장래와 사랑스러운 후배들을 위하여 기꺼이 마음을 내어 주시고
100주년 기념사업에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지금 각기별 동기회를 통하여 100주년 기념사업을 같이 추진해 나갈
기수별 추진위원을 분주히 찾고 있습니다.
추진위원으로 활동해 주시면 더욱 좋고 비록 추진위원으로는 활동하지 않으셔도
각별한 성원과 지원만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100주년 기념사업에 봉사해주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존함은 한 분도 빠짐없이 장차 모교에 설립하고자 하는
100주년 기념관에 명예롭게 헌액되어져 자라나는 후배들로 하여금
선배들의 모교사랑의 정신, 후배사랑의 정신을 배우게 하여
그 아름다운 전통을 영원히 이어가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 대륜 동문님들의 응집력과 저력을 믿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하였기에 세계 최빈국의 반열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
보였던 우리 국민은 훌륭한 지도자 한 분을 중심으로 “잘살아 보자!”라는
구호 아래 국민 모두의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었고
세계 중위권도 안 되는 변방의 축구 실력이었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희망과 함께 국민 모두의 염원을 한곳으로 모아 세계 4강이라는 믿지 못할 성적을 낸 위대한 국민입니다.
이처럼 에너지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힘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약할 수도 있지만
모든 동문님의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만 주신다면
태산이라도 옮겨 놓을 수 있는 힘을 발휘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은 우리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모교와 후배들을 위하여 봉사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우리가 모교(母校)라고 한문으로 쓸 때 어머니 母字를 쓰는 이유는
나를 길러준 나의 학교는 나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뜻이겠지요.
잘 나도 내 어머니, 못 나도 내 어머니, 가이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존재이며 언제나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가 나의 모교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성과보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이루어 내는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성공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훌륭한 후배들을 양성해 내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희생과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므로 모든 동문님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 올립니다.
그 옛날 한솔 선생님을 위시한 여러 은사님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정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100년의 영광을 물려 주셨고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교와 후배들을 위한 노력은
훗날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 더 큰 영광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3월